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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거식증 환자를 연기하는 배우들이 그다지 말라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조금 살쪄 보이는 배우까지 천연덕스럽게 영양실조로 쓰러지는 연기를 선보인다. 그런데 어쩌면 우스워 보일 수 있는 이 장면이 탄탄한 연출과 배우들의 섬세한 연기로 관객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영자씨의 시발택시', '고쳐서 나가는 곳', '감나무 멸망전' 등 젠더, 노동, 연대를 소재로 한 연극으로 주목받은 박주영 연출의 신작 '마른 여자들'이 지난 10일부터 서울 두산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이다. 이번 작품은 거식증 환자 수용시설에 갇힌 여성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은행 주택자금대출 여성의 몸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과 편견을 다뤘다.
박 연출은 13일 연합뉴스와 서면 인터뷰에서 "단순히 거식증 등 섭식장애 증상을 다루는 게 아니라 우리 사회가 여성의 몸을 어떻게 바라봐왔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 작품"이라며 "나아가 내 몸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한 화두까지 던진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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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영 연출 [두산아트센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거식증 환자를 다룬 연극이니 무대에 오르는 배우들도 야위었을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박 연출은 연습 첫날부터 연습실 한쪽의 화이트보드에 '절대로 마르지 마시오'라고 써놓으며 배우들이 배역에 개인대출 맞춰 살을 빼는 것을 금지했다. 배우들의 건강을 해치면서 완성된 연극은 그 자체로 '폭력'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박 연출은 "보이는 직업인 배우들이 배역에 맞춰 자기 몸을 바꾸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고, 그런 연극은 만들어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며 "오히려 크고, 작고, 길고, 짧은 여러 연령대의 몸들이 무대에 올라 마른 몸의 수입자동차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연극 '마른 여자들' 장면 [두산아트센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날씬하지 않은 배우들의 마른 몸 연기에서 야기되는 위화감은 연극적 상상을 통해 수출입은행 충분히 메울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고 한다. 여기에 주인공 로즈 역을 맡은 배우 이세영과 릴리 역의 황미영 등의 섬세한 연기가 작품 전반에 설득력을 부여할 것이라는 계산도 있었다.
박 연출은 "다행히 우리가 하는 것은 연극이고, 연극적 상상은 많은 것을 가능하게 한다"며 "저와 함께 고립과 결핍, 욕망에 대해 많은 고민을 나눈 배우들이 자기만의 방법으로 배역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고 했다.



연극 '마른 여자들' 장면 [두산아트센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작품은 뉴질랜드 출신 작가 다이애나 클라크가 쓴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소설은 거식증 환자 로즈와 폭식증을 앓는 릴리 두 쌍둥이 자매의 이야기를 다루지만, 연극은 로즈의 거식증에만 초점을 맞췄다.
이는 무대라는 제한된 시공간에서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하는 이유도 있지만, 박 연출의 개인적 경험이 투영된 결과이기도 하다.
박 연출은 "상실을 경험한 뒤 3개월간 먹고 토하기를 반복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며 "그때 소설 '마른 여자들'을 알게 됐는데, 거식증 환자인 로즈의 이야기에 더 공감하게 됐다"고 말했다.



연극 '마른 여자들' 장면 [두산아트센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작품이 궁극적으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여성에게 강요되는 '마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보자는 것이다.
박 연출은 "거식증은 스스로를 지워버리겠다는 자기 파괴적인 욕망인 동시에 존재를 인정받고 싶다는 몸부림"이라며 "지금의 여성들과 이 문제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고 말했다.
'마른 여자들' 무대는 오는 28일까지 이어진다.
hy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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