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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등단한 지 15년 만에 두번째 소설집을 펴낸 김엄지 작가. ⓒ임영웅, 문학동네 제공


카페에서 여자 친구를 기다리는 와이(Y). 일주일 만의 만남이 될 것이다. 여름휴가 계획까지 짜겠다며 카페에 이미 오래 머물던 차였다. 통유리로 들이닥치던 해도 사윈다. 저녁 7시가 되어 이젠 술과 안주도 판다고 알려오는 사장. 여자 친구가 30분이 더 지나 도착하자마자 불쑥 말한다.
“헤어지기 전에 한번은 보려고 왔어.”
Y는 심각해지지 않기로 한다. 마실 것을 여자 친구에 야마토게임다운로드 게 권하고, 휴가 계획이나 묻는다. 그러곤 기분을 묻고…, 첫말의 의중을 묻는다. “해본 말이야”라는 답변에 Y는 “여자 친구의 말이 바다 소용돌이 같다고 생각한다.” 이어지는 대화도 마찬가지다. 진심인지 농담인지 알 수 없고 심상한 말은 심상치 않으니, 말은 또 다른 말의 형식에 불과하다.
먼저 물색했던 남쪽 섬 위리도를 보여주며 거기라 바다이야기온라인 면 “완전한 휴가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남자, “완전한 휴가가 뭐야” 되묻는 여자, “완전한 비일상”이라 답하는 남자, “나는 완전환 휴가 원하지 않아” 대신 “나는 완전한 비물질이 되고 싶어” 대꾸하는 여자. 비물질이라. 또 한번 말 아래 소용돌이에 아득했던 걸까. 와이는 펼쳐뒀던 자기 노트에 “be물질”(비물질)이라고 적는다.
이 바다이야기사이트 같이 연인의 대화는 최소화하되 그마저 엇나가길 반복한다. 희극조차 비극으로 예비된 것이려니, 마침내 카페가 정전되고, 밖으로 마른벼락이 치고, 퍼붓는 우박이 통유리를 처참히 깨부순다.



위리 l 김엄지 지음, 문학동네, 1만7000원


릴게임모바일 2010년 등단 작가 김엄지(37)가 10년 만에 내놓은 두번째 소설집의 표제작 ‘위리’에서 펼쳐지는 양상의 전부다. 여기엔 둘의 관계나 전사를 구체화해 볼 단서가 없다. 마치 연출된 ‘부조리극’처럼 사변적 장면들이 이어질 뿐이다. “(카페의) 카운터 뒤에서 사람들은 각자 다른 끝을 상상하고 비슷한 불안을 느낀다.” 연극이라면 희곡의 괄 야마토게임 호에나 감췄을 지시문 정도일 텐데 그마저 불뚝 적시되는 것이다.
‘각자 다른’ 구구절절 서사 대신 앞세우는 ‘비슷한 불안’의 실체는 이렇다. 대화 중 와이의 노트를 가져가 여자 친구가 진심으로 끄적인 걸 카페 유리 ‘파열’의 사태 뒤 와이는 보게 된다. 한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눈썹과 미간이 찌그러진. 눈은 길게 찢어져 사나워 보이고 눈동자가 작다. 각진 턱과 뾰족한 귀.” 와이는 알아본다, 바로 자신의 얼굴이기 때문이다. 그 얼굴 아래 “위리”가 반복하여 적혀 있다. 말하자면 완전하길 바라는 그러나 결코 완전할 수 없는 허위가 위리다. 기만이라기보다 그저 쓸쓸한.
2016년부터 올여름까지 발표한 단편 9편이 엮인 ‘위리’는 사건과 배경, 감정선 가득한 근래의 소설과 매우 구별된다. 김엄지 특유의 미니멀리즘적 구성과 문체가 두드러지거니와, 그것은 상실, 배반, 허위, 적막, 허무의 일상과 관계를 직시하고 차라리 용납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여러 작품이 ‘위리’와 흡사한 시공간과 구도 아래, 황량해지는 일상을 사태로서 반복 변주하거나 연작화하되 그리되기까지에 인물에 대한 연민이나 과장, 문학적 ‘허례’가 적다.
‘여름’ ‘여름 2’ ‘여름 3’이 대표적이다. 동거하던 와이(y)가 한번 나간 뒤로 돌아오지 않는 ‘나’의 집에서도 “정체를 알 수 없는 파열음”이 있었다. 하지만 y는 일찌감치 내비치질 않았던가.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아무것도 위로하지 않는” ‘나’에 대해('여름 2'). 동거 중 쪽지만 남기고 떠난 여자 친구 엘(L)이 5개월 만에 먼저 연락을 해와 ‘나’는 만난다. 미련이 없지 않다, L이 보고 싶을 때마다 “사과하지 않아도 된다”는 L의 쪽지를 ‘나’는 읽었다. 재회한 둘의 대화는 그러나 툭툭 끊겼고 어두워지기 전 헤어지기로 한다. 귀갓길 지하철에서 잠시 졸다 깨어보니 L은 이미 제 역에서 내리고 없다. 그리움이 없지 않고, 비는 내리고.(‘여름 3’)
어디서도 ‘위기’의 내막은 생략되어 알 수 없다. 실상 중요치 않아 보인다. 작중 여러 주인공이 ‘우울’에 잠식된 상태가 사건이자 배경이요, 인물 자체이기 때문이다. ‘여름’으로 곧이 수렴된다. ‘나’는 2년 전 아내와 별거를 시작한 지인 에이(A)의 집에 얹혀산다. 30대 형제인 남성 둘도 더부살이 중이다. 툭하면 다투는 형제가 얼마 전 깨버린 베란다 창문을 볼 때마다 ‘나’는 불안해지지만 달리 방도가 없다. ‘나’는 혹 전세 사기라도 당했던 걸까? 역시 중요치 않다. ‘나’ 스스로조차 “설명하고 싶지 않”은, 세상 널린 “사연”일 뿐. “더 단순하게 살고 싶다”는 ‘나’는 며칠 전 카페에서 눈물을 흘리는 한 남자를 보았다. 알 만했다. “생활에서 작은 만족감도 찾을 수 없는”, “다 필요가 없”어 종국에 “자기 자신조차 필요 없”다고 느끼는 남자. 남자는 카페 전신 거울에 비친 다름 아닌 ‘나’였다.
‘우울’은 만연한 실체적 병리이자, 은유적 프레임으로 읽힌다. ‘우울증 환자가 진실을 더 날카롭게 직시한다’ 취지의 프로이트적 진단으로 윤리의 강박(단편 ‘예지 5’), 고독(‘입생로랑 낭떠러지’), 돌발적 파열(‘가사’) 등 부조리의 현대 일상이 고찰될 법하다. 작중 두루 등장하는 -자신을 더 가혹하게 비추는- ‘거울’과 ‘유리’가 바로 관계와 삶의 대가일 터, 우울을 모르는 자들의 세계만큼은 비정하지도 뻔뻔하지도 않다. “미칠 수 있다는 희망으로 사람들은 주말이면 비 오는 거리로 향했다”(‘비 오는 거리’)는 말마따나 어떤 우울이 희망이 되는 까닭 아닐까.



영국 작가 맥스 포터. ⓒLucy Dickens, 한국문학번역원 제공





샤이 l 맥스 포터 지음, 민승남 옮김, 다산책방, 1만6800원


이러한 세계를 삼키고 감춰 포용한 것이 ‘위리’라면, 2023년 출간된 영국 소설 ‘샤이’는 강렬히 포효하듯 알리는 작품이다. 조울의 증세를 가진 10대 청소년이 할퀴어 세상에 남긴 상처, 맞물려 감당하는 수치와 절망의 삶을 비트감 있게 다룬다.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 영문판 편집자로도 알려진 맥스 포터(44)의 21세기판 ‘호밀밭의 파수꾼’이라 해도 좋겠다. ‘위리’의 인물들은 “언제나 멀어지고 싶”어 하나 관계 맺길 멈추지 않고, 이 세계와의 연을 끊으려던 샤이는 제 발로 다시 걸어 나온다. 샤이의 귓가에 울린 말대로다. “넌 아직 너를 몰라. 내 말을 믿어봐. 앞으로 알게 될 거야.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건 여러 계절이 걸리는 일이지.”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